반짇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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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간 월급쟁이로 일하며 세계 300개 도시를 홀로 걸어온 한 직장인의 여행 기록이 지난 15일 책으로 출간됐다. 이희진 작가의 신간 ‘그래도 여행은 하고 싶어’(모아출판사)는 단순한 여행 에세이를 넘어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깊은 공감과 따뜻한 위로, 다시 나아갈 용기를 건넨다.
이 책은 18개국 36개 도시에서의 체험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작가는 각 도시를 단순히 둘러본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머물며 걷고, 바라보고, 때로는 멈춰 사색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여행을 했다. ‘인증샷’에만 집중하는 여행과는 결이 다르다. 여행지의 사계절, 골목, 풍경, 사람들, 그리고 그 안에서 마주한 ‘낯선 나 자신’을 깊이 있게 담아냈다.
작가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숨 가쁘게 살아온 회사 생활 속에서 느꼈던 회의감과 번아웃,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찾아온 정체성의 벽을 여행을 통해 넘고자 했다. 그렇게 떠난 수많은 도시에서 그는 인생의 방향을 되묻고,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다시 세워나갔다. “속도를 줄이고 인생을 즐겨라. 너무 빨리 가다 보면 놓치는 것은 주위 경관뿐이 아니다. 어디로, 왜 가는지도 모르게 된다.”라는 어느 여행지에서 마주한 이 문장은 이 책의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래도 여행은 하고 싶어’는 총 5부로 구성한 에세이다. 1부 ‘행복, 가봐야 볼 수 있다’에서는 여행이 전해주는 소소한 기쁨과 마음의 안식을, 2부 ‘누구에게나 힘든 순간은 있다’에서는 지친 일상을 여행으로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풀어낸다.
상상하던 북토크 자리는 아니었다. 책 대신 향수 매장에서나 볼 법한 시향지가 눈앞에 놓였고, 자리에 모인 20여 명의 참가자는 1950~1990년대에 만들어진 빈티지 향수의 향을 함께 맡기 시작했다. 이곳은 최근 서울 마포구 플랫폼P에서 열린 ‘향수의 계보학’(파이퍼프레스)의 북토크 현장. 빈티지 향수 수집가 ISP(필명)가 책에서 소개한 고전 향수를 독자들이 직접 체험하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이건 1980년대 샤넬 No.5, 저건 1970년대 에스티 로더의 프라이빗 컬렉션….” 책으로 취향의 문을 연 독자들에게 최근 북토크는 새로운 경험의 장이 되어가고 있다.
파이퍼프레스가 연 이 북토크는 최근 출판계에서 시도되는 ‘경험 중심’ 독서행사 흐름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단순히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넘어, 감각을 공유하고 몰입도를 높이는 만큼 출판사는 이 행사의 이름을 ‘독서경험회’라고 지었다. 참가비 3만5000원이라는 만만치 않은 가격에도 자리는 금세 찼고, 참가자들은 저자의 설명을 꼼꼼히 필기하고 시향지를 모아 바인더에 정리하기도 했다. 딸과 함께 경험회에 참석한 50대 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빈티지 향수에 매료돼 딸과 함께 하나씩 모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열기는 판매로도 이어졌다. 김하나 파이퍼프레스 대표는 “저자의 전작인 ‘향수 수집가의 향조노트’가 5쇄를 돌파했고, 이번 ‘향수의 계보학’ 역시 출간 두 달 만에 증쇄에 들어갔다”며 “대중적 주제보다 특정한 취향을 겨냥한 책이 오히려 더 깊은 관심을 얻는 흐름이 뚜렷하다. 이러한 책들은 오프라인 행사에서 더 큰 반응이 나오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최근의 북토크 현장은 마이크와 테이블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과거 낭독과 질의응답 위주였던 구성에서 벗어나 실내외를 넘나드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독자와의 접점을 확장 중이다. 예를 들어, 최근 화제가 된 요리에세이 ‘정관스님 나의 음식’(윌북)의 북토크는 지난달 서울 종로구 스위스대사관 마당에서 열렸다. 책 집필에 참여한 후남 셀만 작가와 사진가 베로니크 회거가 함께한 이 행사에서는 사찰 요리 명장인 정관스님의 요리법과 함께 책의 뒷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물론, 정관스님의 시그니처인 연꽃잎차 제조 시연과 시식까지 이어졌다. 이외에도 출판사는 책을 구매한 독자 중 인증사진을 남긴 5명을 선정해 정관스님이 머무는 백양사에서 템플스테이를 진행했다. 스님이 직접 만든 음식을 나누는 이 ‘연계형 독서 경험’은 책의 인기에 힘을 보탰고, 해당 도서는 현재 5쇄를 돌파하며 1만 부 이상이 판매됐다.
책 한 권만으로 click here 승부할 수 없는 출판 시장에서, 이처럼 독자와 책을 연결하는 다양한 경험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책 편집을 담당한 홍은비 윌북 편집자는 “독자의 취향과 관심사가 점점 더 세밀해지고 있다”며 “그것을 겨냥한 책도 늘어나고 관련해 연계되는 행사들도 책을 제작할 때부터 염두에 두게 된다”고 말했다.
확고해진 취향과 경험에 대한 수요는 서점가에서도 확인된다. 도쿄(東京)의 호텔을 현직 건축가가 직접 체험하고 기록한 ‘도쿄 호텔 도감’(윌북)은 최근 온라인 서점 여행 분야 1위에 올랐고, 샌드위치라는 좁은 주제만 다룬 요리책 ‘카페 샌드위치 마스터 클래스’(한스미디어)는 요리 분야 베스트셀러에 반년 넘게 머물고 있다.
3부 ‘상실은 성장의 다른 이름’에서는 일과 관계 속에서 겪은 흔들림의 순간들을 통해 진정한 리더십과 조직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전한다.
4부 ‘내 마음의 거울’에서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성장해 가는 모습을 담았고 5부 ‘그래도 나는 떠난다’에서는 다시 떠나야 했던 이유와 그 여정이 안겨준 용기와 변화에 대해 얘기한다.
“여행은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살아가는 것, 그래서 더 살아볼 만한 인생에 대한 응원이다.” 작가는 말한다. 여행은 일상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닌, 오히려 일상을 더 깊고 단단하게 살아가기 위한 훈련이라고. 낯선 도시의 골목을 혼자 걷고, 현지인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홀로 식탁에 앉아 마주한 그 순간들 속에서 삶의 균형을 되찾았다.
‘그래도 여행은 하고 싶어’는 단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 아니다. 방향을 잃은 사람, 삶에 지친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다시 찾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다정한 여행의 초대장이다.